This column was originally published by the Donga Daily (동아일보) on March 26, 201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인에게 브리핑하는 재미교포 정보 분석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은 적이 있다. 재미교포는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트럼프가 다시 물어봤다. 이번엔 대통령처럼 맨해튼에서 왔다고 답했다. 이 답에도 만족하지 못한 트럼프는 당신의 사람들(your people)이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제야 정보 분석가는 부모님이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 ’예쁜 한국 아가씨(pretty Korean lady)’가 왜 미국을 대표해서 북한과 협상 안 하고 있냐고 물었다.
이 사건이 지난해 트위터에서 퍼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미국에서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 김(김성용) 전 주한 미국대사(현 주필리핀 미국대사)처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멜라니아 트럼프 부인처럼 영어 원어민이 아니더라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부모 중 한 명이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다 미국 사람이다.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의 모국과 관련된 일만 해야 하는 것처럼 하는 말이나 행동은 인종차별이다. 미국, 유럽, 호주 등 다문화 다민족 사회에서는 아직도 위의 예보다도 더 심한 인종차별 혹은 혐오 발언 사건들이 있지만 차별 및 혐오 발언에 대한 인식도 강하다.
한국은 외국인, 소위 국제결혼 그리고 귀화 한국인이 아직 많지 않아서 이런 이슈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양극화 문제 등 갈등을 사전에 막기 위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조화된 폐쇄적인 행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어떤 행위들이 폐쇄적이고, 차별이고, 혐오 발언인지에 대한 인식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언론, 교육기관들, 시민사회 모두 각자 할 역할이 있다.
이미 한국에는 다양한 배경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사회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개인 경험 위주로 몇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려고 한다.
가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고 연락이 온다. 외국인, 소위 다문화가족, 귀화 한국인 관련 프로그램들은 오락 가치를 위해서 한국에서 살면서 뭐가 놀랍고, 뭐가 다르고, 뭐가 신기한지 등 ‘외국인’ 입장에서 ’다름’에만 집중한다. 다름에만 집중을 하니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 사회에서 더 소원하게 만든다. 언론이 그리는 그 ’외계인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요청들이 들어오면 거절한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다민족 사회가 돼가는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 대 타인’ 같은 양극화를 피하는 것이다. 비자 관련 법적인 부분 외에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 직원, 교사, 교수를 ’한국인 대 외국인’으로 구분하는 것은 양극화만 심해지게 한다. 학교나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역량을 강화해야 하겠지만,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구조화하는 행동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다문화가족 혹은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때 다른 한국 가족이나 학생과 다르다는 것을 구조화하면 역량 강화가 되지 않고 양극화만 된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유명한 귀화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아들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인데 왜 계속 외국인 관광객처럼 나를 경복궁 답사시키냐”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인종, 국적뿐만 아니라 양파 껍질처럼 세세한 요인들로 이루어진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사람이라면 한국 사람과 비슷한 점이 다른 점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일단 똑같은 사람이고, 아이 교육, 미세먼지 등 똑같은 고민들이 있고, 같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고, 귀화 한국인은 법적으로 똑같은 한국 사람이다.
최근까지는 한국을 좋아하고, 이 사회를 위해서 고민하고, 한국어를 다른 외국 사람들보다 잘하는 ’외국인’이었다. 이제는 한국을 사랑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지만, 한국어가 다른 한국 사람들보다는 조금 짧은 ’한국인’이다. 해외에서나 한국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어볼 때 자랑스럽게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필자 같은 인종이 다른, 혹은 섞인 한국인과 외국인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양극화를 피하고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위해 같이 고민할 때다.